[청화/아오카가] 습기

※ 쿠로코의 농구 | 아오미네 다이키 x 카가미 타이가

※ 개인적 캐해석 有






"오늘 너 나랑 몸이 바뀐 거 아닐까."



   찰떡마냥 바닥에 찰싹 달라 붙어서 추욱 늘어져 있는 카가미의 볼을 콕콕 찌르며 아오미네가 중얼거렸다.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걸까, 금요일부터 방금 전까지 세차게 내렸던 비 때문에 더위가 한층 가셨다.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인 아오미네가 오늘 하루동안 한번도 에어컨 틀자는 말을 안 했으니 확실히 시원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한껏 기분 좋은 얼굴―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보면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을 하고서 선풍기의 미풍을 쐬고 있는 아오미네완 달리 카가미는 땀을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 본인은 죽을 것 같은 더위에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만히 TV를 보던 녀석이 전혀 덥지 않은, 오히려 며칠 내내 비가 세차게 온 이후의 상황에서 저러니 아오미네가 의아해할 만 했다.



"……더워――."

"덥기는 무슨, 오히려 며칠 내내 비 와서 시원하구만."

"…습기……."



   아아. 카가미의 힘 빠진 대꾸에 아오미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미국의 햇빛 아래서 단련된 몸이라 그런지 카가미는 햇빛이 가장 강하다던 12시에도, 지면이 달궈져서 가장 덥다던 2시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다만 습기 앞에서는 달랐다. 습기에 덥지 않아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하지만 강한 햇빛과 뜨거운 기온에도 끄떡없던 카가미는 습기에 엄청 약했다. 어쩌면 더위에 약한 아오미네보다 더 약할지도 모른다.

   이러다간 애 정말 죽겠는데. 잔뜩 물 먹은 빨랫감마냥 바닥에 널브러진 채 꿈쩍도 않고 거친 숨만 내쉬는 카가미를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쳐다보던 아오미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소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던 선풍기의 회전을 멈추고 바람이 카가미를 향하도록 고정시킨 채 미풍이던 바람 세기를 중풍으로 올렸다. 아, 좀 낫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선풍기 버튼에서 손을 떼자마자 잔뜩 쳐져있던 카가미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힘이 들어갔다.



"더워 죽을 것 같애……."



   하지만 그것도 잠시,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카가미의 입에선 죽어가는 목소리가 약하게 흘러나왔다. 중풍이던 바람 세기를 한단계 올려 강풍으로 해주어도 똑같은 결과였다. 너 진짜 습기에 엄청 약하네. 이젠 말할 힘도 없는지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들려오는 아오미네의 말에도 카가미는 묵묵부답. 정말 제습기를 사놓지 않는 이상 카가미는 계속 이 모양일 것 같다.

   …야, 카가미, 앉아봐. 소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채 가만히 카가미를 지켜보던 아오미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말에 대꾸도 안 할 만큼 힘이 없는데 앉으라고 해서 앉을 카가미가 아니었다. 역시 미동도 보이지 않고 계속 누워 있는 카가미에 작게 혀를 찬 아오미네가 움직였다. 별로 힘든 기색 없이 가뿐하게 바닥에 축 늘어진 카가미의 상체를 일으켜 앉히는 아오미네. 그리곤 카가미의 윗옷 자락을 잡더니 그대로 휙 상의를 벗겨버렸다.



"무, 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덥다며?"



   갑자기 훌렁 윗옷이 벗겨지자 없던 힘이 돌아왔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며 큰 소리로 물어오는 카가미에게 되돌아간 아오미네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었다. 천연덕스럽게 대꾸하곤 땀에 젖어 살짝 눅눅한 본인의 옷을 깔끔하게 빨래통 안으로 골인시키는 아오미네를 카가미는 멍하니 쳐다봤다. 아, 엉…. 내가 덥다 그랬지……. 자신의 옷이 들어간 빨래통을 쳐다보던 카가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웅얼거렸다. 얘 이거 더위 먹은 거 아닌가.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보이는 카가미의 멍한 얼굴에 도로 소파에 털썩 앉고 다리를 꼬은 아오미네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옷이 하나 벗겨지자 아까보다 살만한지 멍하던 카가미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진다. 무엇을 쳐다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얌전히 선풍기 바람을 쐬는 카가미. 역시 가만히 소파에 앉아 그런 카가미, 정확히는 카가미의 상체를 내려다보던 아오미네가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역시 벗은 몸이 좋다고.